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가 기대 이상으로 흥행에 성공하면서 제임스 본드 영화는 공식적으로 시리즈화가 시작되었다. 부드럽고 매너 좋은 신사와 거칠고 비열한 킬러의 모습을 모두 갖춘 젠틀맨 스파이, 제임스 본드가 ‘닥터 노’의 2배에 달하는 제작비용을 들고 두 번째의 실버스크린 어드벤쳐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007 제작진은 영국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1957년 발표한 다섯 번째 제임스 본드 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From Russia with Love)’를 영화화하기로 결정했다.

007 제작진이 선택한 플레밍의 원작소설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는 1961년 라이프(LIFE) 매거진에 소개된 미국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의 탑10 서적(Ten Kennedy Favorites)에 포함된 것으로도 유명한 책으로, 소련의 SMERSH가 영국 에이전트 제임스 본드를 제거하기 위해 러시아 미녀와 암호 해독기를 미끼로 본드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를 그린 제임스 본드 어드벤쳐다.

그러나 007 제작진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서 냉전을 직접적으로 다루길 꺼려했다. 60년대 초엔 냉전이 한창이었지만, 곧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제작진은 플레밍의 원작소설 줄거리처럼 영국과 소련의 어둡고 지저분한 첩보전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지 않는 대신 ‘닥터 노’에 등장했던 거대 범죄조직 스펙터(S.P.E.C.T.R.E)를 이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에 따라 영화에선 본드를 제거하려는 조직이 스펙터로 바뀌었으며, 소련의 암호 해독기로 본드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음모를 꾸미는 주체도 소련의 SMERSH에서 스펙터로 바뀌었다. 여전히 러시아 미녀와 소련 암호 해독기가 미끼로 등장하는 것엔 변함이 없지만, 영국과 소련 사이에 스펙터가 끼어든 것이 차이점이다. 하지만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는 플레밍의 소설에 나오지 않는 스펙터를 줄거리에 집어넣었다는 점을 제외하곤 원작에 매우 충실한 제임스 본드 영화 중 하나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은 전편과 마찬가지로 미국인 프로듀서 알버트 R. 브로콜리(Albert R. Broccoli)와 캐나다인 프로듀서 해리 살츠맨(Harry Saltzman)이 제작을 맡았으며, 연출도 ‘닥터 노’의 영국인 영화감독 테렌스 영(Terence Young) 감독이 돌아왔다. 미국인 스크린라이터 리처드 메이밤(Richard Maibaum) 또한 ‘닥터 노’에 이어 007 시리즈 2탄으로 돌아왔다.

오프닝 건배럴 씬과 메인 타이틀 씬 디자인은 미국인 타이틀 디자이너 모리스 빈더(Maurice Binder)가 ‘닥터 노’에 이어 ‘위기일발’로 돌아왔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은 건 배럴 씬 → 프리 타이틀 씬 → 메인 타이틀 씬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007 시리즈 오프닝 패턴이 처음으로 갖춰진 제임스 본드 영화다.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에선 건 배럴 씬 → 메인 타이틀 씬으로 넘어갔지만 ‘위기일발’에선 에디터 피터 헌트(Peter Hunt)가 건 배럴 씬과 메인 타이틀 씬 사이에 프리 타이틀 씬을 추가시켰다. 이 때부터 건 배럴 씬 → 프리 타이틀 씬 → 메인 타이틀 씬으로 이어지는 오프닝 패턴은 007 시리즈의 전통이 되어 거의 모든 제임스 본드 시리즈에 반복 사용되었다.

음악은 제임스 본드 테마(James Bond Theme) 편곡을 맡았던 영국 작곡가 존 배리(John Barry)가 스코어를 맡았다. ‘위기일발’은 존 배리가 스코어를 맡은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다.

주제곡 ‘프롬 러시아 위드 러브’는 영국 작곡가 라이오넬 바트(Lionel Bart)가 작곡했으며, 영국 가수 맷 몬로(Matt Monro)가 불렀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은 가수가 부른 주제곡이 사용된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다. 그러나 ‘위기일발’의 메인 타이틀 씬은 맷 몬로가 부른 보컬 주제곡이 아닌 인스트루멘탈을 사용했으며, 몬로의 보컬 주제곡도 영화에 사용되긴 했으나 메인 타이틀 씬이 아닌 다른 곳에서 흘러나왔다.

주인공, 제임스 본드 역은 변함없이 숀 코네리(Sean Connery)가 맡았으며, 아무 것도 모른 채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암호 해독기를 미끼로 본드에 접근하는 러시아 미녀 에이전트 타티아나 로마노바 역은 1960년 미스 유니버스 2위에 올랐던 이탈리아 미녀 다니엘라 비앙키(Daniela Bianchi)가 맡았다. 또한, 전작 ‘닥터 노’에서 본드를 카지노에서 만났던 본드걸, 실비아 트렌치 역으로 유니스 게이슨(Eunice Gayson)이 돌아왔다. 게이슨이 연기한 실비아 트렌치는 ‘위기일발’에서 본드의 연인으로 등장했다.

‘닥터 노’에서 본드의 상관 M 역을 맡았던 버나드 리(Bernard Lee)와 M의 여비서 미스 머니페니 역을 맡았던 로이스 맥스웰(Lois Maxwell)도 ‘위기일발’로 모두 돌아왔다. 그러나 ‘닥터 노’에서 본드에게 새로운 핸드건 월터 PPK를 건네줬던 특수장비 담당 메이저 부스로이스 역은 피터 버튼(Peter Button)에서 데스몬드 류웰린(Desmond Llewellyn)으로 교체되었다.

007 시리즈 2탄 ‘위기일발’은 첨단 특수장비 전담 부서 ‘Q 브랜치’가 소개된 첫 번째 제임스 본드 영화이며, 데스몬드 류웰린이 처음으로 Q로 등장한 영화이기도 하다. 또한, ‘위기일발’은 007 시리즈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가젯’이 처음으로 나온 영화이기도 하다. 일명 ’007 가방’으로 유명한 브리프케이스가 바로 그것이다. 이밖에도 ‘위기일발’엔 여러 다양한 스파이 장비와 비밀 무기들이 등장했으며, 이러한 가젯들은 이 때부터 007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위기일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악당들이다.

‘위기일발’은 제임스 본드를 제거하려는 계획을 세우는 범죄조직 스펙터의 우두머리, 블로펠드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영화다. 그러나 얼굴은 나오지 않았으며, 의자에 앉아서 흰색 페르시안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만 나왔다. ‘위기일발’에서 고양이를 쓰다듬는 블로펠드 역을 연기한 배우는 ‘닥터 노’에서 프로페서 덴트 역을 맡았던 앤토니 도슨(Anthony Dawson)이다. 그러나 도슨의 얼굴은 영화에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더빙되었다.

본드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스펙터의 음모를 진행시키는 로자 클렙 역은 오스트리아 여배우 로티 레냐(Lotte Lenya)가 맡았으며, 본드를 제거하기 위해 고용된 킬러, 레드 그랜트 역은 영국배우 로버트 쇼(Robert Shaw)가 맡았다.

터키에서 목숨을 걸고 본드에 도움을 주는 케림 베이 역은 멕시칸 아메리칸 배우 페드로 아멘다리즈(Pedro Armendáriz)가 맡았다. ‘위기일발’ 촬영 당시 암 투병 중이었던 아멘다리즈는 통증을 참으며 촬영을 모두 마친 뒤 미국으로 돌아가 병원에 입원했다가 총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위기일발’ 제작진은 영국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와 터키, 이탈리아, 스코틀랜드 등지를 돌며 촬영했다. 많은 사건들이 터키에서 벌어지는 만큼 터키가 주 무대였으며,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헬리콥터 씬과 보트 추격 씬은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했다. 또한 오리엔트 익스프레스 열차에서 본드와 그랜트가 벌이는 격투 씬은 007 시리즈 역대 가장 거칠고 격렬한 격투 씬으로 꼽히고 있다.

‘위기일발’은 1963년 10월10일 영국에서 처음으로 개봉했으며, 이어 유럽, 미국, 아시아 지역에서 개봉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큰 흥행성공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