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d… James Bond.”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Dr. No)’에서 제임스 본드(숀 코네리)가 자신을 소개할 때 처음으로 한 말이다. 그 이후 “Bond… James Bond”와 “My name is Bond, James Bond”는 가장 유명한 007 시리즈 대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제임스 본드 007′은 어디서 유래한 것일까?

제임스 본드는 영국의 소설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 – 1908~1964)의 소설 시리즈로 탄생한 캐릭터다. 플레밍은 1953년 스파이 액션 소설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을 발표했는데, 바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제임스 본드였다.

실버 스크린 버전 제임스 본드는 플레밍의 첫 제임스 본드 소설 ‘카지노 로얄’이 출간된 지 9년이 지난 1962년 숀 코네리(Sean Connery) 주연의 ‘닥터 노’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과 함께 유명한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제임스 본드의 코드넘버 ’007′이다.

‘DOUBLE-OH-SEVEN’으로 읽히는 제임스 본드의 코드넘버 ’007′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를 상징하는 넘버로 통한다. ’007′ 하면 바로 ‘제임스 본드’가 떠오를 정도로 매우 유명하고 상징적인 넘버이며, ‘제임스 본드’와 코드넘버 ’007′을 하나로 합친 ‘제임스 본드 007′으로 불리는 경우도 많다.

코드넘버 ’007′은 플레밍의 소설이나 영화 시리즈의 오피셜 영문 제목에 포함된 적이 없지만,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007 시리즈’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007′은 007 영화 시리즈의 유명한 로고로 사용되고 있다. ’007′ 넘버와 핸드건 모양을 조합해 만든 007 건 로고(007 Gun Logo)는 EON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모든 오피셜 007 시리즈 포스터에 사용되고 있으며, 007 영화 시리즈 관련 상품들에서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007 Gun Logo

그렇다면 소설가 이언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과 그의 코드넘버 ’007′을 어디에서 따온 것일까?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은 플레밍의 자메이카 별장 골든아이(GoldenEye)의 서재에 꽂혀있던 조류 관련서적의 작가 이름을 빌렸다.

새에 관심이 많았던 플레밍은 미국의 한 조류학자가 카리브해 지역의 조류에 대해 쓴 책 ‘Field Guide to Birds of the West Indies (1936)’를 갖고 있었다. 이 때 플레밍의 눈에 번쩍 띈 것은 작가의 이름이었다. 책을 쓴 조류작가의 이름이 제임스 본드(James Bond – 1900~1989)였는데, 플레밍이 구상 중이던 스파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으로 아주 잘 어울려보였던 것이다. 심플하고 평범하면서도 남성스러운 이름을 찾고 있었던 플레밍은 그의 캐릭터에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을 붙여주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해서 조류학자의 이름이 세계적인 수퍼 스파이의 이름이 됐다.

미국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

제임스 본드는 자신의 이름이 플레밍의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1961년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에 대한 정체를 확인한 실제 제임스 본드의 아내 매리는 플레밍에게 편지를 보내 “당신의 캐릭터 덕분에 우리 남편이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고 불평했고, 플레밍으로부터 “나중에 제임스 본드가 이언 플레밍이라는 이름을 붙여줄 고약한 새를 발견할 수도 있지 않느냐”는 사과 답장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제임스 본드 부부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며, 1964년엔 제임스 본드 부부가 자메이카에 머무르던 이언 플레밍을 방문하는 등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에게 친필 싸인을 한 그의 제임스 본드 소설 ‘You Only Live Twice’를 선물하기도 했다.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에 선물로 준 책에 이러한 글도 남겼다 – “To the real James Bond, from the Thief of his Identity.”

그러나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 부부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플레밍의 소설 시리즈에 이어 영화 시리즈까지 대성공을 거두면서 필라델피아에 사는 60대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까지 ‘팬 전화’에 시달렸다. 제임스 본드의 아내, 매리 본드(1898~1997)는 새벽에 주로 10대 소녀들로부터 제임스 본드를 찾는 전화가 걸려 오면 “Yes, James is here, but this is Pussy Galore and he’s busy now.”라고 말했다고 한다. 푸씨 갈로어(Pussy Galore)는 ‘골드핑거(Goldfinger)’에 나오는 본드걸 캐릭터의 이름이다. 매리는 제임스 본드 007을 찾는 팬들의 전화에 “남편은 제임스 본드이고 자신은 본드걸 푸씨 갈로어”라고 대꾸했던 것이다.

이후에 매리 본드는 ‘How 007 Got His Name (1966)’, ‘To James Bond with Love (1980)’ 등 이언 플레밍의 제임스 본드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미국의 조류학자 제임스 본드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퍼 스파이로 만든 책 ‘Field Guide to Birds of the West Indies’는 007 시리즈 40주년 기념작이었던 2002년 제임스 본드 영화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 잠깐 등장했다. 쿠바에 도착한 제임스 본드(피어스 브로스난)가 씨거 회사 보스와 대화를 나누던 도중 집어든 책이 바로 제임스 본드의 ‘Field Guide to Birds of the West Indies’였다.

그렇다면 제임스 본드의 코드넘버 ’007′은 무엇을 뜻하며, 어디에서 따온 것일까?

제임스 본드의 코드넘버 ’007′의 ’00′ 넘버는 살인면허(Licence to Kill)를 소지한 에이전트를 의미한다. 007 시리즈의 세계에선 코드넘버가 ’00′ 넘버로 시작하는 에이전트들은 모두 제임스 본드와 마찬가지로 살인면허를 가진 영국 정보부 소속 에이전트다.

물론 실제 MI6/SIS엔 ‘살인면허’, ’00 에이전트’ 등은 없다. 이는 모두 픽션일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00′ 넘버가 실제로 첩보세계에서 사용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16세기 영국의 수학자 존 디(John Dee)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에게 메시지를 보낼 때 ’00′ 넘버를 사용하곤 했다. ’00′ 넘버는 두 눈을 상징했다. ‘Eyes Only’, 즉 ‘최고 기밀’이라는 의미였던 것이다.

이언 플레밍도 2차대전 당시 그가 영국 해군 정보부에 근무했을 당시 극비 시그널엔 항상 ’00′ 넘버가 앞에 붙어있었다고 회고했다. 여기에서 영감을 얻은 플레밍은 그의 제임스 본드 소설에서 ’00′ 코드넘버를 살인면허를 의미하는 번호로 사용했다.

이렇게 해서 이언 플레밍은 ‘제임스 본드’라는 이름과 ’007′이라는 살인면허 코드넘버를 가진 수퍼 에이전트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