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시리즈 제 1탄 ‘닥터 노(Dr. No)’의 리딩 본드걸, 허니 라이더(Honey Ryder)는 007 시리즈를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본드걸로 꼽힌다.

허니 라이더가 가장 유명한 본드걸로 기억되는 이유는 단지 그녀가 007 영화 시리즈 첫 번째 본드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자메이카의 해변에서 흰색 비키니 차림으로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씬 덕도 크다. 바로 이 씬은 007 시리즈의 상징적인 씬 중 하나로 꼽힌다. 본드걸 허니 라이더가 비키니 차림에 허리춤에 사냥용 칼을 차고 조개들을 손에 든 채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씬은 이후에 여러 모델들에 의해 재현되었으며, 007 시리즈 40주년 기념작 ‘다이 어나더 데이(Die Another Day)’에도 다시 등장한 바 있다.

1962년작 ‘닥터 노’에서 첫 번째 본드걸 허니 라이더 역을 맡았던 여배우는 스위스 태생의 우술라 안드레스(Ursula Andress).

1936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안드레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스위스-독일 여배우였다. 그러던 그녀가 본드걸로 캐스팅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안드레스의 남편이던 미국인 배우 겸 사진작가 존 데릭(John Derek)이 찍은 사진 한장 덕분이었다. 안드레스의 섹시한 사진을 받아 본 007 제작진이 OK를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무명 여배우 안드레스는 당시 무명이었던 숀 코네리와 함께 007 시리즈 1탄 ‘닥터 노’에 함께 출연하게 됐다.

결과는 환상적이었다. ‘닥터 노’ 이후 제임스 본드, 숀 코네리는 세계적인 스타가 되었고 본드걸, 우술라 안드레스는 일약 세계적인 섹스심벌로 부상했다. 그녀가 흰색 비키니 차림으로 바다에서 걸어나오는 씬은 가장 기억에 남는 헐리우드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은 우술라 안드레스의 허니 라이더를 007 시리즈 최고의 본드걸로 꼽고 있다. 지난 2009년엔 질레트가 비키니 60주년을 맞이해 뽑은 ‘최고의 비키니 여신’에서 우술라 안드레스/허니 라이더가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허니 라이더는 누구인가?

1958년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Ian Fleming)이 발표한 원작소설 ‘닥터 노’의 본드걸, 허니 라이더는 자메이카의 해안에서 잡은 조개를 플로리다에 팔아 돈을 벌며 혼자서 생활하는 금발의 소녀다. 10대 후반의 라이더는 나이보다 성숙해 보이는 몸매와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소녀인데, 한가지 옥의 티가 있다면 코가 부러졌다는 점이다. 플레밍은 소설에서 허니 라이더를 ‘She-Tarzan’이라고 묘사했다. 그 정도로 그녀는 도시 생활과 거리가 먼 ‘야생녀’ 스타일이다. 허리춤에 사냥용 칼만 찬 채 누드로 바다에서 걸어나와 해변을 거닐다가 그 근처에 잠복해 있던 본드와 마주칠 정도다. 또, 허니 라이더는 혼자서 아무 것도 할 줄 모르는 무력한 소녀가 아니라 사냥용 칼로 자신을 보호할 생각을 하는 터프한 소녀다. 그녀는 느닷없이 나타난 본드를 보고 허리춤에 찬 사냥용 칼을 손에 쥐며 여차하면 달려들 태세를 취한다.

1962년 영화의 우술라 안드레스 버전 허니 라이더는 원작의 성숙한 틴에이저 소녀보다 농염한 성인 여성 쪽에 보다 가깝고, 코도 부러지지 않고 멀쩡하다는 점 등의 차이가 있지만 전반적으로 원작의 캐릭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술라 안드레스의 음성은 영화에 사용되지 않았다. 영어 발음이 좋지 않았던 안드레스를 위해 성우 니키 반 더 질(Nikki van Der Zyl)이 그녀의 음성을 더빙했다.

허니 라이더가 바다에서 나와 조개들을 검사하면서 ‘Under the Mango Tree’ 노래를 부르는 씬에선 영국 여배우 다이아나 커플랜드(Diana Coupland)가 대신 노래를 불렀다. 노래 역시 안드레스가 직접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물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걸어나오는 씬은 우술라 안드레스가 직접 촬영했다는 사실!

‘닥터 노’ 한 편으로 무명에서 새로운 헐리우드 섹스심벌로 부상한 우술라 안드레스는 데이빗 니븐(David Niven), 피터 셀러(Peter Seller) 주연의 1967년작 제임스 본드 패로디 ‘카지노 로얄(Casino Royale)’에서 또다른 본드걸 베스퍼 린드(Vesper Lynd) 역을 맡으며 본드걸 인연을 이어갔다. 우술라 안드레스는 오피셜 007 시리즈와 언오피셜 제임스 본드 영화 모두에 본드걸로 출연한 유일한 여배우다.

(참고: EON 프로덕션이 제작하는 오피셜 007 시리즈에 포함된 ‘카지노 로얄’은 다니엘 크레이그(Daniel Craig) 주연의 2006년작이며, 1967년작 ‘카지노 로얄’은 오피셜 007 시리즈에 속하지 않는 언오피셜 제임스 본드 영화다.)